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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는 동전
만우절을 맞은 4월의 첫날. 학생들은 엉뚱하게도 수많은 행사를 계획하여 즐겼습니다. 저는 태봉고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시절 만우절 아침, 운동장에서 수업했던 황당한 추억이 있습니다. 이제는 학생들의 누적된 경험과 상상력이 결합하여 더욱 재밌고 풍성한 상황들이 펼쳐지는 것을 보며 역시 태봉고구나 하였습니다.
4월 들어 학생들은 점심시간을 더 바쁘게 보내고 있습니다. 빅발리볼 리그전이 한창이기 때문입니다. 반별로 남녀 각 1팀씩 모두 18개 팀이니 거의 모든 학생이 선수로 참여합니다. 점심시간에 있을 경기를 위해 저녁에도 연습이 한창입니다. 얼마 전부터 시작된 방과 후 야간 수업도 매일 운영 중이고, 각종 동아리 활동도 한창이다 보니 여러 개의 동아리에 가입된 학생은 매일 정신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3월부터 요청했던 학생회 임원들과의 간담회도 얼마 전에 겨우 할 수 있었습니다. 개교 때부터 해왔던 지리산 종주 이동학습을 개편하여, 올해 처음 도전하는 남해 생태탐방 이동학습도 차근차근 준비 중입니다. 2박 3일간 남해 바래길을 걸으며 캠핑하고 함께 밥을 해 먹고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추억을 만들어 갈 남해 생태탐방 이동학습 준비를 위해 모둠을 짜고 준비물을 챙기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는 운동장에서 음악을 켜놓고 2인용 텐트를 치고 걷는 수업을 하는 1학년 학생들의 모습을 보니 대견하고 흐뭇하더군요.
이렇듯 한쪽에서는 바쁘게 달려가고, 땀 흘리며 에너지를 뿜어내고, 때로는 웃음꽃도 피어나지만, 세상일이 그렇듯 태봉고에서도 꼭 그런 면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마치 동전의 앞면과 뒷면을 모두 동전이라고 부르듯, 밝은 앞면의 뒷면은 또 다른 모습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사들은 밝음만 보고 마냥 환호성을 지를 처지가 아닙니다. 놀랍도록 잘 해내는 학생을 보며 손뼉을 치다가도, 마음 한편을 스쳐 지나가는 아픈 학생의 그림자에 움찔하게 됩니다. 어쩌면 이는 다양한 처지인 사람이 가득한 공립대안학교 교사의 숙명일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태봉고 교사들은 함께 모여 고민을 합니다. 우선 학교에서 너무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을 위해 <돌봄위원회>를 개최하여 부모님과 관련 교사들이 모두 함께 모여서 그 학생과 관련된 여러 가지 의견을 나눕니다. 그동안 학생을 만나고 관찰하며 경험한 것, 해당 학생과 유사한 사례, 부모와의 관계, 성장 과정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어떻게 도울 것인가를 의논합니다. 앞으로 돌봄위원회는 <학생맞춤형통합지원(학맞통)>이 생기게 됨에 따라 <학맞통>과 역할을 나누게 될 것입니다.
또한 모든 교사가 모여서 학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도움이 필요한 학생에 대하여 다양한 측면에서 의견을 나누고, 그 학생을 위해 각자가 도울 일이 무엇일지 생각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마치 퍼즐 맞추기와도 같습니다. 학생이 보이는 여러 가지 면이 있을 터인데, 교사 각자가 발견한 단면들을 맞추어 그 학생의 상태와 해결해야 할 그 학생만의 과제들을 입체적으로 구성함으로써, 그 학생을 좀 더 깊이 이해하고 오해를 줄일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교사들은 좀 더 적극적으로 학생들과 만날 수 있게 됩니다. 특히나 교사 각자가 학생과의 관계에서 홀로 분투하느라 고립되거나 소진되지 않게 하는 기능을 합니다. 학교가 전문적인 치료기관은 아니고 교사도 치료 전문가는 아닙니다. 그러나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의논하면서, 학생 뿐 아니라 교사의 장기적 성장의 발판을 조금씩 마련해 나가는 것입니다.
한편 교사들은 매일 학교의 곳곳에서 학생을 만납니다. 반에서 담임으로, 교과 수업 교사로, 동아리 지도교사로, LTI 도움 교사로, 찾아오는 학생의 상담교사로. 이렇듯 수많은 만남과 관심 속에서 교사와 학생은 날줄과 씨줄로 엮여 서로를 지탱하는 힘이 되고 있습니다.
동전이 돌아가면 앞면과 뒷면이 중첩되어 보이듯이 태봉고라는 동전도 항상 중첩된 상태로 매일 매일 돌아갑니다. 조금 전에 어느 학생 덕에 신나다가도 곧이어 또 다른 학생 덕에 슬퍼지거나 불편해지는 게 매일의 학교 풍경입니다. 그 속에서 지내는 학생이나 교사나 많은 에너지가 쓰여 피곤하지만, 그 풍경들이 쌓여 결국 우리의 씨줄과 날줄이 한층 튼튼해질 것입니다.
<신이여, 바라옵건데 제가 바꾸지 못하는 일을 받아들이는 차분함과 바꿀 수 있는 일을 바꾸는 용기와 그 차이를 늘 구분하는 지혜를 주옵소서.>
신학자였던 라인홀드 니버라는 사람이 했던 기도문이라고 합니다. 당장 구분할 능력이 없어서 상황을 받아들일지 바꾸어야 할지 모르겠다면, 일단 뭐든 해 봐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뭐든 선택하여 최선을 다해서 해보고 그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자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 결과로 자연스레 지혜도 생겨난다고 믿습니다. 언제나 내가 살아가는 곳에서 겸손한 마음으로 매일의 최선을 다한다면 말입니다.
2026. 4. 12. 백명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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